1994년 5월 4일 일본 가루이자와. 국제적인 고원 피서지로 이름난 하쓰푸노사토의 북쪽 기슭에 있는 인공 호수 팔정호가 짙은 녹색의 신비스러움을 뽐내는 봄밤이었다. 현대적인 외장의 별장과 유유한 농촌 풍경이 어우러져 낭만적인 정취를 더해 주는 이곳은 전원생활을 즐기는 도시인들의 모던함과 전원생활 자체가 생존인 본토인들의 소박함이 큰 무리 없이 공존하는 팔풍이라는 이름의 관광지다. 자정 무렵, 동네 입구에 있는 잡화 가게의 주인 남자는 요리꺼리를 양손에 가득 든 만삭의 산모를 배웅하는 중이었다.
'산달이 금방이죠?'
남자가 물었다.
'보름밖에 안 남았어요.'
뿌듯하게 대답하는 만삭의 산모는 가벼운 동네 나들이에도 한껏 치장을 하고 다닌다. 가끔 도시로 나갈 때마다 직접 몰고 다니는 외제 차에다 발음도 하기 힘든 명품 의상.
'이곳에 거주한 반년 남짓, 지인들이 다녀간 모습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 여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남자는 손수건 한 장까지도 고가의 제품으로 치장한 그녀가 어쩌면 재벌의 숨겨진 여자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허나 이러한 궁금증이 토박이들 모두의 공통된 의문이라 해도 그러한 사실을 문제 삼는 이는 별로 없다. 각자의 비밀생활에 걸맞는 현란한 과시욕 등은 이 동네에 사는 별장 소유자 대부분의 가벼운 허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먹고 살지.'
그들을 상대로 솔솔이 기본 매상을 올리는 가게 주인에게 처음부터 거부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 동네에 살지만 어차피 사는 세계가 다른 이상 굳이 기가 죽을 필요도 없으며 먹고 사는 것이 왕도인 생존의 세계에서 잘 사는 사람이 있으면 알게 모르게 그들에게 기생하는 부류들은 친절만이 가장 현명한 처세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내년 어린이날에는 혼자가 아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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